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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보다 긴 꿈 dream longer than night

 

현대사회는 과거가 뱉어낸 그 축축한 공기로 또 다시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 진정 나의 밤, ‘작은 죽음’보다 긴 꿈은 스스로 이와 같은 고전이 되는 생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생하고 있는 고전을 닮고자 그림에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고전, 그 안에는 시대의 보편적인 욕망이 들어있다. 그리고 시대의 욕망을 욕망한다.그 옛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형식 중 접히고 펼쳐지는 병풍들이 많은데, 병풍은 어느 공간에서든지 그것을 펼치면 바로 그 세계로 갈 수 있다. 세계와 또 다른 세계를 잇는 어떤 문과도 같은 구조로 느껴진다. 마치 그 문을 열면 화면 속 이미지들의 기운이 나를 향해 몰려오는 것만 같다.화면 안에서 주어진 나의 현실을 이상화하며 병풍적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다시 서로 연결시키며, 때로는 화면 밖으로 가져와 설치하기도 한다.

최근 사진관프로젝트 작업을 하던 중, 스테레오카메라로 찍힌 근대풍경들이 눈에 들어왔고 병풍적 구조로 느껴졌다. 스테레오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뷰어를통해 보게 되는데, 그것으로 보는 세계는 펼쳐진 두 개의 화면이 접혀지면서 보이는 세계이다. 그래서 사진을 회화로 다시 회화를 사진의 매체로 전환시켜, 회화로 펼쳐서 보고 스테레오뷰어를통해 사진으로 접혀진 공간을 느끼게 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어느 한 한국근대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모던보이두 명이 두 마리의 학에 둘러 쌓여 함께 찍힌 모습이었다. 사진관 자체도 욕망의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는 이상화된 현실세계이다.그동안신화,설화 등 고전을 다루다보니작품속공간배경이 대부분 이상화된 산수였는데, 그 그림들의 일부는 근현대를지나오면서 사진관 배경이 되어 있었다.산수화에서 노닐던 학들은 이렇게 사진관 소품으로 쓰이며 현실이 더 이상화된 세계였고, 허실상생虛實相生, 현실과 이상세계는 이미 사진 한 장 속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이때부터였다. 화면속배경들을 가까운 과거,먼저 온 미래에서 찾기 시작한다. 근현대공간들,근대사진,근대잡지속그림,조선화라 일컫는 북한화가들의 그림,선전물 등.

욕망의 초상

배경이근 현대로 오면서 상상동물이 아닌 상상이 빚어낸 실존하는 혼성동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먼저 상상동물 그 중 용을 보면 사슴의 뿔,소의 머리,뱀의 몸,물고기의 비늘,독수리의 발톱 등으로 현실적인 개체들의 형상에 기반을 둔, 인간의 정신세계 속에서 무한히 다종교배 되어 배태(胚胎)된상징개체물이다. 한번도 보지 못한 존재이긴 하나 그들이 낯설고 이질적인 개체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오히려 실존하는 혼성동물들이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다.잡종,혼종,교배.결국 인간의 욕망에 의해 배태되어진 괴물과도 같은 결과물들이다. 작품 <라이거와타이곤의 초상>에서는 수컷 사자와 암컷 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거,수컷 호랑이와 암컷 사자 사이에서 태어난 타이곤의 초상이 나타난다. 전통적인 전신사조(傳神寫照)초상화론에가까워지려 할수록 인간보다 동물의 초상이 떠오른다. 혼성동물은 근대의 산물 중 하나로 시대의 욕망의 초상이다.

이미지의 근대극장

이미지는현실과 이미지 자신과의 사이에 항상 욕망을 삽입해 넣는다. 욕망이 삽입되는 만큼 이미지는 이상적 개인을,집단의 꿈을,이곳에 없는 유토피아를 담아내며 현실을 넘어선다.잡지 표지의 이미지는 잡지 기획자의 욕망과 대중의 욕망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이 둘의 욕망이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역사가 움직이는 순간이었다.이미지가 가지는 현실과의 간극은 욕망이 틈입하는 장소였으며 그곳에서 변화가 기획되고 역사가 실현되었다.(시대의 얼굴_서유리 저)

그 중 <별건곤別乾坤>은1920-30년대 대중종합지로 이 세상 밖의 다른 세상을 뜻하며 시대의 무릉도원을 그 이름 안에 담고 있었다.그리고1914년 창간되었던 <청춘>에서는 표지 그림이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의 작품으로 늠름한 조선청년이 그리스신화 속 의상을 입고,잘 생긴 백두산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배경이된풍경

근현대공간,배경이된 풍경에 대한 리서치를 서울에서부터 시작했다.첫 번째로 심우장尋牛莊(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달동네 북정마을을 찾아갔을 때 발길이 닿았던 곳.심우장이란명칭은 본성이라는 소를 찾기 위해서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깨닫게 되고 최후에는 이상향에 이르게 됨,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을 나타내고 있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그 곳에서 나는 동자를 보았다.

그리고딜쿠샤Dilkusha(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88번지).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지상 2층 규모의 서양식 주택으로,대한제국 및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하던 미국의 기업인 겸 언론인 앨버트테일러와그의 아내 메리 린리테일러가살던 곳이다.딜쿠샤는힌디어로 '기쁨,이상향'을 뜻하며,메리린리테일러가인도 북부 러크나우(Lucknow)지역곰티강 인근에 자리잡은 딜쿠샤코티DilkushaKothi또는Heart 's Delight라고 불리는 궁전을 방문했었고,행촌동에 왔을 때 그것을 떠올려 이렇게 이름 붙인다.이상향이라 불리던 인도의 딜쿠샤는손상된 모습으로 현재 모두의 공원이 되었고,한국의딜쿠샤는이방인들의 집이 되었다.

세 번째로는 현재 인천 작업실 근처에 위치한 ‘호월일가胡越一家‘(인천 남동구 논현동 635-1)였다.호월일가.서로 관계가 소원하거나 거리가 먼 곳도 한 집안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인천은 실향민들과 근대건축물들이 남아 있다.그리고 최근에 나타난 특징중에하나로 탈북민들이많이 살고 있는데,작은 북한이라 불리는 논현동에 탈북민자매가 운영하는 그들의 소망을 담은 음식점 ‘호월일가’가 있다.먼저 온 미래이다.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 꿈

강원도 금강군 금강산. 이곳에서 금강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 꿈을 꾼다.분단은 철저하게도 근대의 산물이었다.분단을 겪으며, 고전설화 속 인물들도 달라졌다.변개된 북한설화. ‘선녀와 나무꾼’에서의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도 오누이는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다. 이렇게 북한은 그들의 주체사상에 맞게 설화를 변개하고 있었다.동서양의 신화는 옷만 바꿔입은듯한 느낌이 많은데,북한설화는 옷도 결말도 다르다.이제는 혼재,변화를 겪으며 역사속에서변개된 인물들,하늘로 올라가지 않는 오누이도 선녀도 받아들여야 할까.지금 되새겨야 할 것은 그들을 타인이 아니라 ’나‘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끊임없이 인식하며 서로 닮아있음을 찾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다.호월일가胡越一家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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