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der Crossings - North and South Korean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Kunstmuseum Bern, Swiss / by Wonseok Koh

 라오미가 서양화를 전공하고 무대미술과 사극영화미술에 참여했으며 한때는 문화재연구소에서 일하며 복원모사가를 꿈꾸기도 했다는 정보는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요긴하다. 라오미는 본격적인 작품활동 이전에도 현재의 장소를 과거의 어떤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통해 사라진 시공간을 재현하는 예술행위의 일부를 담당해왔다. 현재를 과거로 만들고, 다시 그것을 현실성을 갖춘 공간으로 환원시키는 매력적인 일을 수행해왔던 것이다. 

 작가로서 라오미는 오래되어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다. 과거를 지나가버린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현재의 가상공간으로 변환시키면서 독특한 시공간적 상상력을 발현시키는 그의 작업은 과거를 현재화했던 일을 반복했던 직업적 경험에 그의 작가적 혹은 체질적 관심이 합쳐진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을 살아 있는 무엇으로 바꾸는 그의 작업은 밀도 높은 구성의 회화로 표현되거나, 혹은 그 회화까지를 포함한 복합적 공간설치로 표현된다. 매 작업이 다분히 복합적 상황을 포함한 프로젝트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는 매번 작업의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사전 연구를 진행한다. 그가 모으는 광범위한 역사적, 혹은 문화적 자료들은 과거 특정한 장소의 서사 구조와 이미지를 재발견하고 표현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작가의 다양한 실천에 의해 구축된 하나의 시공간은 그것과 유사성을 가진 새로운 시공간과 연결됨으로써 그 의미의 영역확장을 시도한다. 그의 작품 안에서 전통과 현대, 가상과 현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조우하고, 동시에 그 이면의 빈 공간도 생성되는 것이다. 

 

스스로 무대가 되는 라오미의 그림들

 

 <극장국가>(Theater State)는 1980년 미국의 인류학자인 클리포드 기르츠(Cliford Geertz)가 19세기발리섬의 수도인 네가라(Negara)를 지칭하며 만든 말이다. 그러나 그 용법은 주로 냉전구도에서 적극적인 프로파간다를 구사하던 국가주의적 면모를 일컫는 데에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대중동원식 프로파간다 이벤트가 수시로 벌어지는 북한을 묘사하는 저서명으로 잘 알려지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일제 식민지 직전에 있었던 대한제국 정부를 묘사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했으니 특정 이데올로기 기반의 지역만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2점으로 구성된 라오미의 회화 <극장국가>는 1900년대초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반도의 근대화된 모습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된 엽서, 중국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도시인 단둥에서 바라본 압록강의 사진, 중국의 관광객들을 유인하는 엽서이미지 혹은 북한에서 역동적으로 진행중인 고층아파트 건설을 홍보하는 마케팅 사진 등 여러 이미지들을 레퍼런스로 삼고 있다. 원색 중심의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된 그림 안에서는 가파르게 솟아 있는 금강산의 암벽 봉우리, 서구 고전미술의 동상이미지 부분, 압록강 위 끊어진 다리, 북한식 고층아파트의 생경한(uncanny)한 외관, 서구 고전 건축물의 고전적 기둥과 바닷가로 이어진 길 등 동서양의 요소들과 자본주의 및 사회주의적 속성의 이미지들이 혼재되어있다. 

 ‘극장국가’라는 말에서 ‘극장’은 연출된 프로파간다를 강조하는 국가주의적 문화전략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펙터클을 동반하는 국가 공식행사 등을 통해 정부의 통치력을 강화하는 전략은 제국주의와 냉전시대를 거쳐 오늘날에까지도 일부 명맥이 이어오고 있다. 

 <극장국가>가 흥미로운 것은 그가 극장의 실존적 요소를 이용해 극장국가의 개념적 속성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가 극장의 무대 이미지를 자주 그렸던 이전의 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의 작업이 이미 철지난 국가주의의 기억을 소환시키는데 머무르지 않고 생생한 현재성을 획득하는 이유는 다양한 시각매체가 일상적 삶의 저변에 깔려 있는 오늘날에도 국가주의의 그림자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가 상징하던 동시대적 국가주의는 코로나 19로 인한 국가단위의 방역시스템에 의해 더 공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국가는 여전히 미디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단위이며, 일상의 삶 속에서 아직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삶이다. 극장은 추상과 실제 사이를 오가며 수시로 변모하는 개념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호월일가>는 작가가 사용했던 인천의 작업실 근처에 탈북민 자매가 운영하던 북한음식점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서울과 가까운 거리의 항구도시인 인천은 근대 한반도의 최초 개항도시였고, 쇠락한 구도심의 근대건축물들과 국제자유경제지구의 화려한 고층건물들을 동시에 가진 메트로폴리스며, 다수의 이주민들에 이어 최근에는 탈북민들이 거주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도시다. 라오미는 당시 작업실 인근의 식당을 운영하던 탈북민들과 대화하면서 금강산 관광사업이 남북관계경색으로 인해 중단된 지 10년이 되었음을 상기했다고 한다. 

 많은 설화를 탄생시킨 금강산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이상향처럼 여겨지던 절경의 장소였고, 분단 이후 남한에서는 휴전선 너머의 가볼 수 없는 비경처럼 여겨지던 곳이다. 2천년대 초반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가 급격히 좋아지던 시기에 시작한 금강산 관광사업은 한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남북관계 복원과 협력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나,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었을 때 허망하게 중단되어 물경 10년의 시간이 지났던 것이다. 

 라오미는 시대가 꿈꾸는 것들에 대한 허망함을 상기하고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근대의 산물인 분단 이후 금강산은 사회주의의 영토에 놓이게 되었고, 그것에 관한 설화도 의도적으로 수정되었다. 분단 이전부터 하늘로 올라가던 선녀는 이제 더 이상 올라갈 수 있는 하늘이 없어졌고,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이제 더 이상 해와 달이 될 수 없다. 설화가 제거된 금강산의 풍경이 이전처럼 비경으로서의 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라오미는 근대의 짧은 역사가 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정체성을 변질시키는 사실에 혼란을 느꼈다. 그리고 근대 시기 금강산에 관한 무대, 관광엽서, 조선화, 금강산에 많이 살았다는 호랑이 등의 이미지 자료들을 수집했고, 이것을 기반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 속에는 금강산의 가파른 봉우리들과 폭포, 소나무 숲과 호랑이 등의 이미지가 근대식 서양 가옥의 벽난로나 계단 손잡이, 화병이나 조명, 시계 등의 이미지들과 혼재되어 있다. 작가는 5미터 길이의 대형 회화인 이 작품은 전시장 안에 배치되는 일반적 회화라기보다 일종의 무대배경으로 간주하고 활용한다. 마치 색바랜 흑백사진의 색감처럼 이 그림의 색상은 모노톤으로 절제되어 있다. 그는 폐관된 극장의 무대 위에 이 그림을 배경으로 세워놓고 그 앞에 카펫을 깔거나 오래된 의자 등을 놓는 등 다분히 연극적 상황을 연출한다. 실제로 오래된 카메라를 세워놓고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여 마치 근대 시대 이상향적 배경이미지를 가진 사진관에서 흑백사진을 찍은 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퍼포먼스, ‘100년전의 스튜디오’를 실행하기도 했다. 

 무대는 복합적 시공간이 공존하는 환상의 장소다. 무대로 소환된 금강산은 근대가 단절시킨 전통을 재연결하는 라오미의 예술실천에 의해 그 비경의 아우라를 다시 획득한다. 그것은 현재에 소환된 근대이자 근대 이전의 전통으로 근대를 극복한 근대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의 번잡함이 과거를 만나 가상의 공간으로 치환된 또 다른 현재이기도 하다.